언론 : 피아노 음악
일시 : 2004년 11월호
제목 : 연주문화의 개척자 어뮤즈텍㈜ 정도일 대표
얼마 전 한 연주자와의 인터뷰 중에 두고두고 생각나는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었다. 무대에서 실내악을 연주하는데 서로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함께 보고 있는 악보가 바뀌는 것도 모른 채 연주에만 집중, 모두 음악에 빠져버렸다. 그러다 문득 악보의 어디를 연주하고 있는지 모르겠기에 상대 연주자에게 살짝 ‘지금 어디 하는 거예요’ 라고 물었단다. 그랬더니 글쎄 ‘나도 몰라요’ 했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이야 우스개 소리로 넘길 수 있지만 함께 연주하는 단원들은 분명 진땀을 흘렸을 것이다. 실내악뿐만 아니라 독주에서도 연주 중에 악보를 넘기는 일은 연주에만 혼신을 다해야 하는 상황에서 참으로 난감한 일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말만 하면 저절로 시스템이 작동하는 세상까지 다가왔다는데 그동안 음악가들은 디지털과는 거리가 먼, 자신들만의 아날로그의 벽 속에 갇혀 지낸 듯싶다. 그런데 얼마전 악보를 넘기는 일은 일명 넘순이의 몫이라고, 악보에 레슨된 내용은 레퍼토리별로 서재에 꽂아 두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음악계에 먼나라의 일처럼 들리는 신기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것은 사건이라기보다는 음악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명이 될수도 있는 일로서 ‘뮤즈북 스코어’라는 ‘전자악보’가 등장한 것이다.
2003년을 마무리하며 한국 음악사의 이정표로 남을 강충모의 바흐 대장정에서 등장한 ‘뮤즈북 스코어’는 세계에서 처음 나온 솔루션으로 악보를 자동으로 넘겨주는 음악인식 전자악보로서 어뮤즈텍(주)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소프트웨어다. 연주자의 피아노 연주 소리를 듣고, 연주위치를 실시간으로 따라가며 페이지를 넘길 때 자동으로 다음 페이지로 넘겨주는 신개념 전자악보로 이날 강충모 교수의 뛰어난 연주만큼이나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
어뮤즈텍(주)의 정도일 대표는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학·석사를 마치고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개발팀에서 일한 인재로, 인터넷이 국내에 도입되기 전부터 이메일, 웹 서버를 구축했던 컴퓨터 기술자 중에서도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전문가다. 안정된 회사를 그만두고 낯선 음악계에 음악인식이라는 신기술로 이 시장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과 인연이 되려고 했던 것인지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웠었고, 또 전공을 생각했을 만큼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피아노를 전공한 집사람은 대학에서 캠퍼스 커플로 만나 지금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늘 음악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그런지 예전부터 음악인들이 음악활동을 하면서 겪는 불편함을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학도이기에 바로 전자악보라는 새로운 연주 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는 비전을 갖게 되었고, 음악인식 기초기술을 기반으로 음악교육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회사를 창립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 7월에 설립된 어뮤즈텍(주)는 ‘예술을 재미있게 하는 기술 (Amusing Technology of the Muse)’ 이란 뜻으로 좀더 쉽고 정확하게 음악을 연주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유용한 도구를 제공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 비전의 한 중심에 바로 음악인식기술이 살아 숨쉬고 있다.
그렇다면 음악인식기술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이 음악을 듣고 이해하는 것처럼 컴퓨터가 음악을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음악을 들으며 음높이와 템포, 크기 등을 감지하는 인간의 음악인식 과정을 다양한 디지털신호처리 기술을 적용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로 모방하는 것을 말한다.
이 회사의 직원들도 모두 음악적 관심이 높은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을 영입했고, 4년 여에 걸친 기술개발로 음악인식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기도 했다. 또한 이미 다수의 기관들이 음악인식 분야 원천기술 라이센싱 문의를 해 오고 있어 이를 통한 수익창출도 내다보게 되었다. 2001년 ‘벤처기업확인’(중소기업청)을 비롯하여 같은 해 ‘KT 마크’획득(과학기술부), 2002년 중소기업 기술혁신개발사업 과제 선정 및 성공판정(중소기업청), 2003년 벤처기업 재확인(중소기업청) 등의 성과도 있었다. 이미 음악인식기술, 전자악보와 관련하여 12건의 국내특허 및 23건의 해외특허를 출원했고, 이 중 현재 7건이 국내에서 등록되었고, 미국에서도 1건이 등록되었다.
뮤즈북 스코어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다. 어뮤즈텍(주)는 국제적인 악기전시회에서 세계적인 전자악기 제조사들의 주관심 대상기업이었고, 경쟁사 직원들이 사진을 몰래 찍어간 뒤 비슷한 제품을 출시할 만큼 독보적인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전시회 기간중 외국의 한 유명 외국악기 제조사 K사의 기술진이 어뮤즈텍(주) 부스를 여러차례 방문해서 기술에 관련해 문의하기도 했고, 라이브 연주를 통해 시연을 하는 행사에서도 가장 폭발적인 반응으로 성황을 이룬 것도 모두 어뮤즈텍(주)의 제품이었다. 잠깐 정도일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자.
“피아노 보면대에 종이 악보 대신 태블릿PC를 올려놓고, 컴퓨터에 저장된 MusicXML 전자악보들을 마음대로 불러서 사용하는 ‘뮤즈북 스코어’는 피아노를 연주하면 태블릿 PC에 연결된 마이크를 통해 소리를 듣고 분석해 자동으로 페이지를 넘겨줍니다. 연주자의 연주속도가 빨라지거나 느려져도 현재 연주위치를 계속 추적하기 때문에 연주자는 페이지를 넘기기 위해 연주를 중단할 필요가 없이 연주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연주되는 소리는 분석해서 음이 맞을 경우 음표의 머리 부분을 색칠하여 보여주고, 악보와 다르게 연주했을 경우 실시간 표시 기능을 멈추도록 지정할 수도 있다. 또한 악보를 셈여림, 빠르기 기호까지 지켜가며 미디 연주로 들려줌으로써 곡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한다.
태블릿 PC의 전자펜을 이용해서 악보 위에 직접 필기할 수도 있고 저장 관리할 수도 있으니 두꺼운 악보집을 들고 다니는 불편도 이젠 해결 가능한 셈이다. 연주자의 연주를 녹음해서 재생할 수 있어서 자신의 연주를 친구나 레슨 선생님께 음악파일로 전송까지 할 수 있다. 더구나 모든 피아노(어쿼스틱 피아노와 디지털 피아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장점도 갖고 있다. 뮤즈북 미디스코어는 디지털 피아노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필요한 악보는 온라인 라이브러리를 통해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내년에는 현악기용과 관악기용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 제품을 사용한 강충모 교수 또한 '연주하면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고 기능면에서나 디자인 등 앞으로 연주가에게 꼭 필요한 제품이 될 것 같다'며 대단한 신뢰감을 표시했다.
콘서트용 전자악보 시스템, 뮤즈
뮤즈북 스코어와 함께 ‘뮤즈’(Muse)는 연주회용 전자악보 시스템으로 페이지 터너가 원격에서 악보를 넘겨주는 방식이어서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안정감을 갖고 연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모든 악기의 연주자는 그동안 연주 중에 손으로 악보를 넘겨야 했는데 이 전자악보는 연주자의 연주에 맞추어 정확하게 악보를 넘겨준다. 자신이 보던 악보와 똑같이 컴퓨터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연주회를 위해 시스템을 단기간 임대해서도 사용할 수 있다. 연주자가 보면대 위에 놓인 태블릿 PC를 통해 종이악보와 똑같은 전자악보를 보면서 연주하며, 전자펜으로 필기도 가능하다. 주의사항 등을 표시한 상태로 연주회에 사용할 수 있다. 뮤즈는 피아노뿐만 아니라 모든 악기의 연주자, 지휘자도 사용할 수 있다.
2004년 9월 피아니스트 김대진의 모차르트 연주회에서 지휘대 앞에 놓였던 악보는 일반 악보가 아니라 바로 이 ‘뮤즈’였다. 이것 역시 전자펜으로 필기할 수 있으며 페달로 페이지를 넘기는 솔루션도 곧 출시 예정이다.
김대진 교수는 '지휘를 하면서 늘 악보를 손으로만 넘기다가 이렇게 편리한 제품의 도움을 받고 보니 더욱 연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며 '연주자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음악과 디지털은 전혀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도일 대표는 '음악이야 말로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수학처럼 그 질서가 정확하다.' 고 말한다. 특히 바흐의 평균율은 수학이론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작품이며 그래서 작곡가들의 수학적인 능력이 뛰어난 이유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앞으로 이 음악인식 기술이 잘 활용되면 피아노를 치면서 악보를 만들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또 연주 내용을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글·국지연 기자 / 사진·윤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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